진보란 없다. 망상일뿐이다.

조만간 누군가는 말해야 할 것 같다. 진보의 개념이란 순전한 망상이라고. 이 선입견과 갈라지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기획과 계획, 분석과 역사적 재건과 우리의 모든 과학적 개념은 거짓된 기초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진보의 개념에 안녕을 고할 때이다.

인간 사회의 선형적인 진보적 발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를 이해할 때 모든 것은 곧 즉각적으로 제 자리에 잡힐 것이다.

진보의 개념은 18세기에 백과전서파에 의해 처음 공식화된 것으로, 피오레의 요아킴의 성부, 성자와 성령의 세 왕국에 대한 이단의 사설에서 기원한다. 정교회 전통은 성부와 성자의 시대인 신약과 구약의 시대를 인지할 뿐, 그리스도교 문명의 종말은 짧은 배교의 시대, 적그리스도의 도래에 이어진다. 어떤 특별한 영적 회복이나 그리스도교의 개선같은 것도 예정된 바가 없다.

성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 인류는 무너진다 - 타락, 붕괴, 몰락이 따른다. 피오레의 요아킴과 대부분 가톨릭 교회의 프란치스칸이었던 그 추종자들은, 대조적으로 미래를 멋진 것으로 여겨,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이 무너지면, 무언가 더 숭고하고 신성한 - "성령"의 왕국의 시작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백과전서파는 "성령의 시대"는 물론 교회와 하느님 그자신도 더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 문화의 종말에 대한 확신은 공유되어 종교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시작이 즐겁게 선포되었다. 그리스도교 이후에는 더 공정하고, 더 완벽하며, 더 이성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진전된 무언가가 도래할 것이었다.

이것이 튀르고, 콩도르세, 디드로, 메르시에같은 무신론자와 유물론자가, 절대적인 도그마로 재빨리 승격된 인류의 보편적인 진보의 이론을 발달시킨 것이다. 모더니티를 사는 사람들은 신, 인간, 마음, 물질, 사회, 위계, 철학 등 모든 것을 의심하도록 고무받았지만 진보에 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성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자명할 수 있을가? 가장 뛰어나지도 인상적이도 못한 다수 사상가의 의견이 어째서 도그마의 지위를 갑작스레 획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개인은 그것을 비판하지도, 이성적으로 논의하지도, 의문을 가지지도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종의 미스터리가 있다. 현대에 진보란 절대적으로 부인되지 못한다. 이러한 특징은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 관념론적이거나 유물론적인 모든 과학적 학파에 공통된다. 진보에 대한 신념은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그리고 종교는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합리할 수록 믿을만한 것이 된다.

그러니 진보와 관련하여 모터니티는 고대, 중세, 신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위계, 제국, 군주제, 신성한 농경의 태고적 기초를 폐기한다.

물론 전통주의자와 역사의 논리에 있어 순화적인 개념을 신봉하는 일부 사상가 양측, 유럽 구조주의 학파, 새로운 인류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진보에 대한 비판은 있었다. 진보의 신화는 뛰어난 러시아계 미국인 사회학자인 피티림 소로킨에 의해 설득력있게 패퇴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적인 의식에서 - 그리고 무엇보다 집단적인 무의식에 있어서 - 진보의 개념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련의 대규모 정치적 참사, 현대 문화의 명백한 타락, 사회 시스템의 붕괴, 정신분석의 불길한 발견들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아이러니한 비판 등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도 맹목적으로 진보를 믿는다. 따라서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그러나 개인은 우리 곁의 실재의 모습이 다시 주목받게 될 때면 이것이 이단으로 근거없는 가설이며, 역사의 진정한 가르침으로부터 전적으로 논박당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

현대 문명은 되려 급격한 사양길에 있다. 이는 쓴 고백이지만 절망과 같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면 - 물론 정말로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 충만함과 건강함으로 돌아가자. 악화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상태로 모든 것을 있던 그대로 돌려놓자. 나아가 진보에 대한 각하는 삶의 특정 측면의 개선을 인지하는 걸 금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구속력을 가진 법칙이 아닐 뿐이다.

무언가가 개선될 수 있다. 무언가가 악화될 수 있다. 나아가 한 단계가 다른 단계를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회에서 이 순환은 - 만일 그들에게 어떤 보편적 알고리즘이란 게 있다면 -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어디에서 진보가 있다면, 어디에서는 퇴보가 있다. 러시아가 여름이라면 아르헨티나는 겨울이다. 진보가 없다면 우리는 냉정한 합리성과 자유를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지만 더 나쁜 곳으로도 만들 수 있다. 매순간 무언가를 만들 때면 당신은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무엇도 분명한 것이란 없으니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의존해 있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를 가치있게 만들자. 지금보다는 분명히 낫게. 그러나 이 방향으로 작은 진전을 만들려면, 이 위험하고 타락하고 도착적인 이단인 진보의 개념을 무자비하게 폐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https://katehon.com/en/article/there-no-progress-it-delusion